칠레 피노체트 장군 인물, 한방에 이해하기
칠레 피노체트 장군 인물, 한방에 이해하기

피노체트란 누구인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칠레의 장군으로써 1973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물이다. 1990년까지 칠레를 독재정권으로 통치했으며, 집권 기간 동안 고문, 강제 실종, 살인 등 광범위한 인권 유린 행위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시행한 대표적인 칠레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고, 이런 경제정책으로 좋은 변화도 있긴 했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피노체트는 1915년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해 9월 11일, 피노체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정부에 쿠데타를 행하여 집권했다. 당시 사회주의자인 아옌데 대통령은 1970년부터 정권을 잡았는데, 군대를 포함한 국가의 엘리트들이 반대하는 국유화와 토지 개혁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전형적인 계획정부 수립을 주도한 것이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피노체트는 세력을 모으고 쿠데타를 감행해 집권했다. 쿠데타는 폭력적이고 그야말로 피비린내가 나는 현장이었다. 아옌데는 살해되었으며, 피노체트는 정권의 지도자라고 스스로 선포했다.
피노체트가 집권한 새 정권은 반대 의견을 진압하기 위해 즉시 가혹한 조치를 했는데, 당시 수천 명이 체포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당했다고 한다. 언론 탄압은 물론이었다. 피노체트 정권은 장군을 중심으로 세력을 모았고, 스스로를 숭배하게 했다. 이렇게 하나의 장군이 신성시되면서 국가의 질서를 회복시킬 강력한 지도자로 여겨졌습니다. 피노체트는 칠레의 안정과 번영을 위협하는 반공산주의와 반사회주의적 성향을 짙게 갖춘 인물이었다.
피노체트의 가장 악명 높은 행위 중 하나는 죽음의 캐러밴이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다니며 정치범들을 처형한 사건을 죽음의 캐러밴 사건이라고 한다. 죽음의 캐러밴은 1973년 9월과 10월 사이에 70명 이상을 죽였다. 그러나 피노체트 정권은 또한 칠레 경제를 변화시킨 경제 정책을 시행했다. 정부는 많은 국유 기업을 민영화하고 자유시장을 개척하였는데, 일부 경제학자들이 이로 인한 경제성장에 대하여 고무적으로 관점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 이후에는 항상 불평등이 따라오듯이 칠레에도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었다. 칠레에서 여전히 빈부격차는 논란이 되고 있다. 1988년 피노체트 정권은 지속적인 권력유지를 못하게 될 상황에 놓였고 존속여부를 두고 국민투표를 하게 되었다.
야당에 패한 피노체트 정권은 1990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예상했듯 퇴임 후 피노체트는 많은 법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1998년 그는 정권 기간 동안 자행된 인권 유린 혐의로 런던에서 체포되었으나, 91세 그가 사망할 당시까지 유죄판결을 내지 못했다. 피노체트의 경제 정책은 오늘날까지 칠레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국가 경제의 현대화로 인정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정책 실행에 대해 그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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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단단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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